시나리오

프레쥬디스

OPIM_NukeTip 2019. 1. 27. 22:34

프레쥬디스

 


나의 아버지는 두 대의 타임캡슐을 만들었다.

내가 10살 때 아버지는 타임캡슐 한 대와 함께 사라졌다.

아버지와 함께 사라진 타임캡슐은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타임머신이다.

우리의 신체를 과거나 미래의 세계로 옮기는 기계다.

그러나 다른 한 대의 타임캡슐은 좀 다르다.

시간 전파장이 캡슐 밖을 향한게 아니라 캡슐 안쪽을 향해 있다.

, 캡슐 밖의 시간을 조절하는 게 아니라,

캡슐 안의 신체의 시간을 과거로 돌리는 기계다.

 

아버지는 이 타임캡슐의 시간 전파장의 세기를 천만분의 일 정도로 약화시켰다.

시간 전파장이 신체에 직접 노출되면 신체가 녹아버릴 정도로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억마저 과거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천만분의 일 정도로 약한 시간 전파장은,

뇌의 해마 세포가 과거로 돌아갔다가 금새 원상복귀 될 정도로 약하다.

그래서 기억은 유지되면서 신체만 과거로 돌릴 수 있다.

 

그렇게 약한 시간 전파장이더라도 하루 7시간을 초과한다면,

신체에 무리가 간다.

그래서 아버지는 하루 7시간을 넘기면 자동으로 시간 전파장이 멈추도록 만들었다.

 

--

 

캡슐이 자동으로 멈추면 기상 알람소리가 들린다.

 

시간 전파장에 1시간 노출하면 신체는 10시간 30분 과거로 돌아간다.

타임캡슐은 하루에 7시간만 작동할 수 있다.

그래서 하루에 72시간을 과거로 돌릴 수 있다.

그러나 하루는 24시간이 흘러가기 때문에,

신체는 하루에 약 48시간이 젊어질 수 있다.

 

내가 아버지의 타임캡슐을 찾은 이유는 그녀 때문이다.

 

이 수 민.

 

우리 회사의 인턴 사원이며 나이는 22살이다.

면접을 봤던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그녀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밝고 차분한 얼굴과 목소리... 그리고 젊음이 있는 수민.

수민이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올 때 나의 심장은 쿵쾅거린다.

주말보다 회사에 출근하는 월요일이 기다려진다.

가끔 복도에서 마주치면 밝은 미소로 인사를 건네오는 수민.

다정다감한 성격이라서 주위 사람들에게도 인기도 많다.

그래서 더욱 다가가기가 힘들다.

인턴 견습을 위해 수민이와 함께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수민이는 초밥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함께 저녁으로 초밥을 먹으며, 음식이 모자라 보이는 수민이에게,

내 접시에 있는 초밥을 하나 건네주었다.

 

역시 우리 실장님밖에 없어요.

 

수민이는 환한 미소를 날려주며 초밥을 먹는다.

또 다시 쿵쾅거리는 나의 심장.

 

수민이와 함께한 짧은 출장 시간이 끝나고,

집까지 그녀를 차로 태워 주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수민이를 보면서,

잠시 고백을 해볼까? 생각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수민이를 좋아하는 건 죄가 아니다.

나 역시 수민이와 마찬가지로 결혼을 해 본 적도 없고, 현재 애인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겁이 나는 건,

주위 사람들의 시선들과 수민이 나의 고백을 거절할까봐서다.

나는 48살이다.

수민이는 22살이다.

나와 수민이의 나이 차이는 현재 26살이다.

 

집에서 온종일 사랑노래를 들으며 수민이의 페이스북을 본다.

그리고 감정을 삭힌다.

거울 속엔 눈가에 주름이 자글하고 머리숱이 없는 나의 모습이 보인다.

연예인들처럼 가꿔본 적도 없고 인생을 소모하며 늙은 중년 남자다.

보톡스, 피부 관리, 머리 심기를 생각하다가,

나는 아버지의 타임캡슐을 떠올렸다.

 

수민이에게 남자가 생길 가능성이 있으므로 긴 시간은 어렵다.

 

목표는 6년이다.

 

6년 후가 되면 나의 신체 나이는 36살이다.

그리고 수민이는 28살이다.

현재 26살 차이에서 8살 차이로 확연히 줄어든다.

 

오늘부터 시작이다.

나는 이불을 챙겨서 타임캡슐 안으로 들어간다.

 

 

1년이 지났다.

 

내 신체나이는 46살이고, 수민이는 23살이다.

나이차이는 23...

 

6개월간 나는 시간 멀미로 고생했다.

아버지는 시간 멀미가 일반 배 멀미에 비해 10배는 힘들다고 노트에 적어놨었다.

현기증, 호흡곤란, 역한 냄새, 구토...

직접 시간 멀미를 경험해 보니 10배 이상으로 악몽이었다.

멀미는 또한 엄청난 체력을 소모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졸음이 쏟아져서 일의 능률도 많이 떨어졌었다.

그러나 극복해야 했고 결국 극복했다.

멀미를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수민이와 함께 한 야한 생각이 가장 컸다.

주위 사람들은 내 모습에서 큰 변화는 아니지만,

뭔가 변했다는 느낌을 받는 듯 하다.

 

건강해보이세요. 요즘 운동하세요?

 

나는 하루에 물 2리터씩 꾸준히 마시고,

1000개씩 줄넘기를 한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대충 둘러댔다.

 

 

2년이 지났다.

 

내 신체나이는 44살이고, 수민이는 24살이다.

나이차이는 20...

 

수민이는 충분히 남자친구가 생길 나이다.

가끔 남친 있냐고 슬쩍 떠보지만 아직은 없는 듯 했다.

나는 남자 만날 만큼의 시간 여유는 없지만,

회사를 관두지 않을 정도의 일과 야근을 수민이에게 시켰다.

나는 회사 임원들에게 젊은 생각을 들을 필요가 있다는 논리를 폈다.

그리고 직원들 평가서를 조작했다.

그래서 수민이를 팀장으로 파격 승진을 시키고 급여도 대폭 인상시켰다.

도덕적으로 맞지 않은 행동이란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 역시 감정을 가진 사람이고,

벌을 준다면 받겠다고 생각하며 내 자신을 위안했다.

수민이가 팀장으로 승진하자 회의실에서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가끔 나와 눈이 마주치면 수민이는 미소를 보내준다.

나는 잠시 수민이가 나에게 호감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와 연배가 비슷한 회사 동료들 대부분은,

2리터 마시기와 줄넘기 1000개의 효과가 미미하자 포기했다.

 

 

3년이 지났다.

 

내 신체나이는 42살이고, 수민이는 25살이다.

나이차이는 17...

 

내 머리숱은 풍성해지고 피부는 탄력을 찾아갔다.

 

그리고 수민이에게 청첩장을 받았다.

수민이는 대학때부터 줄곧 사귀던 남자친구가 있었고,

철저하게 비밀로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깟 주위 시선이 뭔 상관인가?

거절 당하더라도 한번 고백이나 할걸하고 후회했다.

나는 수민이의 결혼식에 가서 초밥을 먹으며 초밥 위에 눈물을 떨구었다.

 

수민이는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남편과 함께 프랑스로 떠났다.

나는 온통 결혼식 사진으로 도배된 수민이의 페이스북을 보았다.

아마도 조금 있으면 아기 사진으로 도배될 것이다.

나는 수민이의 페이스북을 차단했다.

 

이제 젊어져야 될 목적이 사라졌다.

그래서 캡슐이 아닌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희안했다.

3년간 캡슐에서 자던 습관 때문인지 잠도 오지 않고,

오히려 침대위에서 멀미가 느껴졌다.

비록 목적은 사라졌으나 젊어진건 후회되진 않는다.

 

어디까지 젊어질 수 있을까?

 

나는 다시 이불을 챙겨 타임캡슐로 들어갔다.

 

 

10년이 지났다.

내 신체나이는 28살이고, 수민이는 32살이다.

나이차이는 -4...

 

작년에 이미 수민이보다 내 신체나이가 젊어졌다.

나의 주민등록상 나이는 58살이다.

정년을 생각할 나이이며 성인나이트 출입도 애매할 나이지만,

클럽 출입도 자유롭게 한다.

의미 없는 젊은 신체와의 하룻밤도 이제는 지겹다.

 

 

12년이 지났다.

 

내 신체나이는 24살이고, 수민이는 34살이다.

나이차이는 -10...

 

주말에는 가끔씩 한적한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두고,

앞으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했다.

벤자민처럼 아기가 되어 죽을까?

확실한 건 노화로 인한 자연사로부터는 점차 멀어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실장님...?

 

수민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순간 환청인가? 하며 돌아보았다.

믿기 어렵다는 얼굴의 수민이었다.

 

맙소사... 실장님 어떻게...?

 

수민이는 나의 젊은 모습에 놀랐지만,

나는 수민이와의 우연한 만남에 더욱 놀랐다.

 

우리 둘 모두 일행이 없이 혼자였다.

10년만에 서로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수민이는 5년 전에 이미 이혼을 하고,

프랑스에서 계속 지내다가 3달 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현재는 간단한 번역일을 하며 지낸다고 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자식은 없다고 했다.

수민의 얼굴의 주름 사이로 예전의 싱그러움이 느껴졌다.

 

나와 수민이 모두 하릴없이 나와서 한가했다.

함께 영화를 보고 저녁으로 초밥을 먹었다.

초밥을 좋아하는 수민이에게 예전처럼 내 접시에 있던 초밥 하나를 건네 주자,

 

역시 우리 실장님밖에 없어요.

 

수민이는 예전처럼 환한 미소를 날려준다.

또한 예전이랑 변함없이 나의 심장은 쿵쾅거렸다.

 

나는 수민이를 집까지 차로 태워주었다.

수민이는 손을 흔들더니 집으로 들어간다.

나는 수민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내 자신이 한심했다.

왜 또 망설이는가? 이젠 고백해도 상관 없지 않은가?

나는 용기를 내며 차에서 내리려 하는데 차창밖으로,

수민이가 다시 차로 돌아오고 있었다.

나는 차창을 내린다.

나와 수민이는 차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며,

아무말 없이 한참을 서 있었다.

 

나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알았어?

 

수민이는 고개를 절래절래 젓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얼굴에 살짝 실망의 표정이 돈다.

수민이는 다시 입을 연다.

 

수민       실장님도 제가 좋아하는 거 몰랐죠?

 

수민이는 환한 미소를 짓고,

나는 그 당시에 고백하지 않은 게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나와 수민이는 매일같이 만나고...

함께 식사를 하고 집까지 배웅을 하고...

통화와 문자를 반복하고...

같이 있고 싶어서 우리집에서 동거하기 시작했다.

 

나는 캡슐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수민이와 한 침대에서 잠을 잤다.

침대에서의 멀미도 느껴지지 않았다.

 

행복한 나날이 반복되다가... 수민이는 어느 순간 힘들어 했다.

 

수민이는 주위 눈초리들로 인해 힘들어 했다.

주위 사람들은 당연하게 내가 수민이보다 연하라고 이해했다.

물론 신체나이는 수민이보다 내가 어리다.

 

수민이가 사람들에게 내 민증상 나이를 알려줘도 사람들은 농담으로 알아 들었다.

 

가끔 사람들과 우리가 섞여 있을 때면,

수민이는 나에게 오빠라는 호칭과 존댓말조차 힘들어 했다.

그렇다고 내가 수민이에게 누나라고 부를 수는 없다.

나는 수민이에게 오빠라는 호칭도 없애고 반말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야자를 한다고 극복될 일은 아니었다.

수민이는 나보다 늙은 자신의 모습에 대해 우울해 했다.

 

나는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그리고 수민이에게 타임캡슐을 공개하고 그동안에 대한 일을 얘기 했다.

수민이는 믿기 어려웠으나 증거가 있으니 믿을 수 밖에 없었다.

 

나와 수민이가 비슷한 나이가 되려면,

수민이는 캡슐에서, 나는 밖에서 4년 동안 따로 자야 했다.

 

수민이는 캡슐 안으로 이불을 챙겨서 들어갔다.

 

수민이가 시간 멀미를 잘 이겨낼 수 있을까?

 

 

16년이 지났다.

 

내 신체나이는 28살이고, 수민이는 26살이다.

나이차이는 2...

 

걱정과 달리 수민이는 시간 멀미를 가볍게 이겨내었다.

 

수민이가 말은 하지 않지만 아마도 나처럼 야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이제는 함께 캡슐 안에서 잠을 잘 수 있다.

 

 

20년이 지났다.

 

내 신체나이는 21살이고, 수민이도 21살이다.

나이차이는 0...

 

 

나와 수민이는 노화에 대한 감각이 생겼다.

굳이 날짜를 계산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조금 늙었다는 느낌이 들면 캡슐에서 잠을 자고,

너무 젊어졌단 느낌이 들면 캡슐 밖에서 잠을 잤다.

20살 이하로 젊어지는 건 피곤했다.

맥주라도 살 경우에 신분증 검사를 받아야 했고,

우리의 신분증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눈초리들이 피곤했다.

 

나의 친인척들과 친구들이 하나 둘씩 죽어갔다.

그러나 장례식장은 주위 눈초리들이 거슬려서 잘 안 가게 되었다.

 

회사는 작년에 그만 두었다.

사장을 비롯해서 임원들과 직원들 모두 바뀌었다.

연륜까지 겸비한 나의 젊은 신체가 일을 처리하는 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나를 보는 주위 눈초리들이 버티기가 어려웠다.

회사 사람들은 내 나이를 인정할 뿐 믿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괜찮다.

30년이 넘는 퇴직금과 저축해 둔 돈이라면 족히 앞으로 50년은 버틸 수 있다.

돈이 떨어져도 젊은 신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겠는가?

 

나와 수민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50년이 지났다.

 

내 신체나이는 23살이고, 수민이도 23살이다.

나이차이는 0...

 

인공지능이 무섭게 발전하여 사람들의 일자리가 부족했다.

사람들의 무분별한 신체개조는 부작용도 많았다.

노화를 늦추는 의학기술을 인공지능이 개발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젊어지는 기술은 없었다.

나의 아버지의 발명품이 50년 이상 앞선 기술이었다.

 

모아 놓은 돈이 모두 떨어졌다.

그래도 돈을 벌기 위해 동안 선발 대회에 나간 건 큰 실수였다.

 

사람들은 나와 수민이의 젊은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신기해 했다.

그리고 우리가 급조해낸 동안비법들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의 동안비법들이 그들에게 효력이 없자 의심하고 불신하기 시작했으며,

집단 지성들은 그들이 믿고 싶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들이 만든 이야기에 따르면...

 

나와 수민이는 큰 나이차이로 인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축복받지 못한 사랑이었다.

그래서 나와 수민이는 숨어서 지냈다.

그리고 출생 신고도 없이 이란성 쌍둥이 남매를 낳았다.

이란성 쌍둥이 남매는 점차 크면서 남매 이상의 사랑을 했다.

당연히 나와 수민이는 그들의 사랑을 반대했다.

그러자 쌍둥이 남매는 충동적으로 나와 수민이를 살해하게 되고...

나와 수민이의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젊어진 행세를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졸지에 나와 수민이는 우리가 낳은 이란성 쌍둥이 남매가 되었고,

부모를 죽인 패륜아가 되었다.

사람들에겐 급조해낸 동안 비법이나 타임캡슐보다도 훨씬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아니라고 해봤자 집단 지성들은 이야기를 더 설득력있는 얘기로 진화시켰다.

 

타임캡슐은 2년 전에 고장이 났다.

이젠 타임캡슐을 공개하려 해도 사람들이 믿어줄지도 의문이다.

타임캡슐의 시간 전파장 튜브는 갈라졌고 캡슐의 유리는 깨져서 금이 갔다.

시간 전파장의 강도가 증가한건지 우리는 일주일동안의 기억을 몽땅 잃은 적이 있었다.

그때 이후로 우리는 타임캡슐에 들어가지 않았다.

신체가 녹아버리거나 벤자민처럼 아기가 되어 죽게 될지도 모른다.

 

여론에 못이겨서 나와 수민이는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

유전자 검사를 받을 때,

긴 시간을 함께 한 우리가 유전자까지 닮아지지 않았을까 잠시 불안했었다.

당연히 유전자 검사 결과 남매가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결과가 그리 중요하진 않다.

앞으로 또 다른 설득력 있는 이야기들을 집단 지성들이 만들어낼 것이다.

그리고 나와 수민이를 괴롭힐 것이다.

 

나와 수민이는 유전자 검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에 휩쓸려버린 우리는 지쳤다.

그리고 나와 수민이의 생각은 일치했다.

서로 타임캡슐을 바라보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함께 타임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작동 스위치를 누르고 눈을 감았다.

 

 

나와 수민이는 얼굴에 쏟아지는 밝은 햇살에 눈을 떴다.

타임캡슐의 깨진 유리 밖으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꿈인가?

 

파란 하늘에는 유니콘이 날아다닌다.

타임 캡슐 밖은 아름답지만 난생 처음 보는 꽃과 나무들로 둘러쌓여 있다.

뭔가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세계다.

타임 캡슐을 자세히 살펴 보니,

시간 전파장 튜브는 터져 있고 금 갔던 캡슐의 유리는 깨져 버렸다.

아마도 튜브가 터지며 나온 강한 시간 전파장이,

캡슐의 안과 밖에 모두 영향을 준 듯 했다.

이곳이 미래인지 과거인지는 알 수가 없다.

확실한 건, 우리가 있던 곳에서 아주 먼 시간임은 분명했다.

 

1년이 지났다.

 

나와 수민이는 정처없이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한번도 사람을 마주친 적이 없었다.

어쩌면...

나와 수민이 그리고 수민의 뱃속 아이가 처음 또는 마지막 인류일지도 모르겠다.

 

 

5년이 지났다.

 

나와 수민이는 한 곳에 정착했다.

예쁜 집을 짓고...

수민이가 낳은 이란성 쌍둥이 남매와 함께...

그리고 아름다운 동식물들과 함께...

 

젖과 꿀이 흐르는 지상 낙원에서 살아간다.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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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캡슐이 작동을 멈추며 기상 알람 소리가 들린다.

 

나와 수민이는 행복했던 꿈에서 깨어난다.